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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고백1

이평 x 알타

 

 

조용히 잠들 생각이었다. 딱 한 가지만 하고. 단 한 번도 이 작전을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방심했던 걸까. 이평은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꼼지락거렸다. 시선이 위로 향했다. 알타가 일어나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평은 알타의 눈을 쫓아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차갑게 식은 발도 꼼지락거렸다. 사각거리는 이불을 느꼈다. 괜히 감각이 전부 살아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슨 좋아해야? 알타의 시선이 정확하게 자신의 눈을 향해있었기 때문에 꼭 모든게 까발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당황했다. 당황하지 않기로 했지. 이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뻔뻔하다느니, 선수라느니, 바람둥이라느니. 그런 말을 들어도 좋다.

 

"무슨 좋아해냐니, 그야..." 

 

그야. 뻔한 추임새 뒤로 말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클리셰와도 같다. 대본에 주어진 침묵을 지키는 것 마냥 짧고도 긴 시간이 지나갔다. 알타의 눈이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무슨 좋아해냐니? 고요한 와중에 문득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속옷부터 칫솔질까지 하나하나 간섭한 것은 자신이다. 잠든 알타의 얼굴 오만곳에 뽀뽀한 것도 자신이다. 그런데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물에 물감 풀 듯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아직 몰라서 물어보는거야?

 

이평은 사심없어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것은 포커페이스다. 어떤 패를 내놓을지 상대에게 속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걸고 있는 가면이다. 왜냐면, 들키는 것은 사양이니까. 준비없이 발각되는 것 만큼 난처한 일은 겪고싶지 않다. 당당하게 먼저 고백해야지. 그게 마흔이 넘어서일지라도. 그 전까지는 알타의 모든 일상에 자신을 끼워넣고, 자신이 옆에 있는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신이 알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명제가 되도록 만드는게 중요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완전히 틀려먹었다는 것을. 선명하고 예쁜 녹색 눈동자 앞에서 깨닫고야 만다. 웃음이 점점 옅어지고 입꼬리가 내려간다. 이평은 지금 무척 난처하다. 결국 웃음을 지어야 한다는 명령체계까지 사고가 도달하지 못한거다. 목소리가 무뚝뚝하게 나가고만다. 그렇게 노력해왔는데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거다. 아직 자신이 알타의 전부가 되지 못한거다. 명제는 완성되지 않은거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슬퍼지는 좋아해야." 

 

서운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간다. 차라리 평소처럼 잠들지그랬어. 시선을 맞추던 눈동자가 도르르륵 내려간다. 초점이 흐려지고 눈은 이불을 쥔 손으로 향한다. 이런 식으로 고백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 좋아하는건 상관없는데, 나만 좋아하는걸 들키는건 싫다. 입이 댓발 튀어나오고만다. 왜 자신이 삐지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다.

 

"동성이니까 이성은 아닌데,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좋아해야."

"성적으로 좋아한다고 해야하나."

 

이게 무슨 말이래. 이제 정말 나체와 다름없었다. 

수치와 함께 발 끝이 얼음장처럼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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